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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는 오랜 역사를 가진 풍부하고도 다양한 우리의 전통예술이다. 실용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서법 예술로 승화되어 왔다. 서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환경을 아름답게 하고 문화생활을 풍부하게 할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 수양은 물론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강인함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어 심신의 건강활동에 유익하다. 서예를 배우려면 예술적인 안목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장기간 꾸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성공을 기약할 수 있으며, 또한 서예는 기교가 아니라 內的 心性에 의한 예술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書는 마음의 劃'이라 하여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잘 나타낸다고 한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하여 서예를 배우기도 하고 정서교육 면에서 서예를 배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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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書는 마음의 劃 ◈ 근래에 와서 서예에 관한 인식이 급격히 높아져 과거에 없던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과거(科擧)의 필수요건으로 소수의 특수계층에서만 즐길 수 있었을 뿐이며 오늘날과 같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보급 진흥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서예의 융성은 국민 문화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교양으로서 예술로서의 서예에 대한 가치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정신적 안위와 고상한 취미 생활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서예의 원류는 중국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이 서예는 육예(六藝)의 하나로 손꼽혀 과거(科擧)는 물론 도(道)를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것으로서 한자와 더불어 동양문화의 정신적 기조에 깊은 관여를 하게 되어 발전되어 왔다. 서예는 또 다른 예술과 같이 국민 예술로서 국민 사상의 선도(先導), 취미생활의 배양(培養)에 큰 사명을 발휘하였다. 우리가 붓글씨의 본질을 논할 때 사람의 심상(心狀), 곧 정신적인 면과 자연을 떠나서 생활 할 수 없다. "書는 마음의 획(劃)"이라 하여 "心正이 곧 筆正"이라 하여 그것이 곧 서법(書法)이라고 하였다. 글씨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여 글씨 쓴 사람의 도덕성까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매사에 적극적이거나 강욕성(强慾性)이 왕성한 사람이 쓴 글씨는 우견(右肩)이 올라가고, 반대로 근심이나 실의에 잠긴 사람이 쓴 글씨는 좌견(左肩)이 아래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으며, 마음이 잘 변하는 사람은 글줄이 이리저리 잘 비뚤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글씨를 쓸 때에는 허심탄회하여야 하며 잡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어떠한 장소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담력을 평소부터 배양하여야 하고, 휘호장(揮毫場)등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고 조급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심기(心機)훈련이 중요하다. 당(唐) 태종(太宗)은 "글을 쓰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눈과 귀를 거두고 집중 시켜 잡념을 끊고 정신을 엄정히 한데 모아 마음을 똑 바르게 하고 氣는 和하게 하여 현묘(玄妙)한 경지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心神이 부정하면 점획이 비뚤어지고 志氣가 不和하면 글씨는 반드시 전복(顚覆)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글씨(書)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것으로 글씨를 심획(心劃)이라 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씨는 청수(淸秀)하고 혼후(渾厚)한 데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신행(心行)의 바른 데가 글자에 보여야 한다. 心行을 바로 하지 아니하고 붓끝으로만 예기(藝技)에 치우치면 형체는 이루어지겠지만 체본(體本)의 노예에 불과할 것이다. 필묵(筆墨)에 나타나는 성정(性情)은 곧 쓴 사람의 性情의 發露라 하였다. 그러므로 필자의 性情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서예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자기의 性情을 다스리는 것은 글씨에 한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능의 道에 숙달하려면 그 길이 험한 법이다. 서예 역시 어디까지나 書法에 준하여 끊임없이 자유 무애(無碍)의 길을 닦지 아니하면 수려한 작품을 얻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