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서의 서예

     

      인간의 삶은 많은 활동이 있다. 정치부문, 경제부문, 사회부문 외에도 많은 활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조 활동과 비 창조 활동이다. 인간은 이 두 활동 중에 하나에는 늘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창조 활동에 참여하더라도 대부분은 단순한 기계적 활동인지라 진정한 창조활동이라고는 말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생계에 관련된 연명의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창조활동은 인간은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얽매이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여가가 필요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 자유의 시간 또한 창조적인 활동 비창조 활동으로 나뉘어 진다. 그 창조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예술이다. 그러므로 이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예술과 기술의 차이중의 하나는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 활동은 인간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고대인들의 동굴 벽화나 장신구 등에서 우리는 오래 된 인간의 예술성을 알 수 있다. 모든 나라에 예술이라는 단어는 있다. 이러한 단어의 공통점은 기술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은 감상으로서의 예술과 창조 과정으로서의 예술로 나뉘고 다시 창조활동은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만들고 싶은 느낌이 생기는 과정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에 관한 예술가의 체험이 밖으로부터 자극을 받음으로써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매우 아직 희미하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음의 단계는 구상의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가 겉으로 나타내고 심은 동기로 되어 상상력을 자극해서,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하나의 생각을 품게 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세세한 것이 아닌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일이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영감에 의해 자극을 받는데, 보통 영감은 쌓아 온 재능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즉 부단한 정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의 다음 단계는 마음 안에 구상이 가라앉음이라 하겠다. 구상의 단계에서 아직 발전하지 못한 희미한 상태에 있던 생각의 내 용이 예술적 상상의 힘으로 다듬어져서 차츰 통일과 질서를 얻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예술가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잇고 원래의 계획의 작품과정 중인 이 과정에서 바뀌어 나갈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는 완성의 단계다. 마음속에 가다듬어진 것이 어떤 물적 재료나 기법을 써서 바깥으로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이루어 놓은 마지막 움직임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 을 이루어 놓은 마지막 움직임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 작품은 이룩되는데 이러한 예술 작품은 이해(理解)를 떠나서 생성되므로 도덕정치와 같은 예술과는 달리 가치를 잴 수 있는 일정한 척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서예는 예술로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일단 예술의 분류에서 본다면 書에는 공간 예술이고 보는 예술이다. 서예는 일단은 실생활에 필요한 부분에서 파생된 것이다. 글은 일상생활 의사의 전달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서예는 보통 철로 만든 펜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양의 서예는 털로 만든 붓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동서양의 큰 차이 즉 딱딱하다는 것과 부드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특히 동양의 글씨란 것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꽤 오래 전에 글이 생겼고, 그것이 처음에는 막대기나 손으로 쓰여지다가 후일에는 털로 만들어진 붓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중국의 예술을 보자면 6가지의 예술이 있는데 그것은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이다. 藝, 樂, 射, 御, 書, 數가 상형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예술로 보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겸손함을 중시 여기는 예의와 흥겨운 가락의 악과 힘차고 정교 한 활쏘기, 빠르고 정교한 말 몰기, 인간 의사의 전달을 나타내는 글쓰기와 정확함을 주로 하는 數가 왜 중국인의 눈에는 예술로 보였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섯 가지의 공통점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여섯 예(六藝)의 대표적 공통점은 실생활과 관계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여, 악, 사, 어, 서, 수가 모두 사회 생활이 어느 정도 성숙하여 가는 곳에서는 모두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의 생각에는 예술이란 겸손한 마음으로 흥겹고 힘차게 의사를 전달하는 정확, 정교한 무엇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섯 가지 예 중에서 이 모든 것을 합친 개념이라는 것이다.

     

      붓을 진행시킬 때에 겸손한 마음과 흥겨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힘있게 그어져야 하며 생각을 전할 수 있어야 하며, 아름답고 정교하여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예술은 기술과도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가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생명을 순간 순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 속에서 자세히 표현되는 것이다. 즉 또 다른 자아가 드러나고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즉 예술이 일반적인 특성 - 기술과는 구별되는 - 의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작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서예의 경우는 더 더욱 그렇다. 가는 털 하나 하나가 그의 상태에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서 표현되는 것이 기술이 아닌 서예이고 그것은 대개의 경우 인간의 망막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이상에서는 예술로서의 서예가 갖는 특징 [창작과정을 중심으로] 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예술도 중요하다. 물론 감상하는 행위도 예술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면을 알려고 노력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이 상태에서 우리는 감상자의 마음이 이미 아름답게 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술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감상의 부분만을 행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정신의 작용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은 다시 창조의 욕구를 북돋워 준다.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감상과정 중에 정신이 순화되고 이것이 창조 과정에 다시 영향을 주는 피이드 백 과정을 거친다. 감상의 과정과 창조의 과정은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부단한 정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게 되며 구현된다는 것이다.
     

                                                           * 참고문헌 : [예술론-조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