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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書5)-옛사람들은 왕왕 行筆(행필)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에서 行(행)자를 사용하여 붓털의 동작을 형용한 것은 매우 묘한 표현이다. 붓털은 항상 점과 획의 가운데에서 이동하는데 이는 마치 사람이 길을 걸을 때와 마찬가지 현상이다. 사람이 길을 걸을 때 두 다리는 반드시 한쪽을 들면 다른 한쪽은 길에 붙어 있어야 한다.

        붓털도 마찬가지로 점과 획의 가운데에서 이동을 하기 때문에 한쪽을 들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획의 가운데 붙어 있어야 한다. 붓털을 획의 가운데 붙어있게 하려면 필봉을 종이에 눌러야 하고 반대로 일으키게 하면 필봉을 들어올려야 하는데 이는 바로 팔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다. 그러나 붓을 누르고 들어올리는 것은 반드시 수시로 결합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붓을 눌러야만 들어올릴 수 있고 또 들어올려야만 다시 붓을 눌러서 항상 필봉이 가운데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사람이 길을 걸을 때의 동작과 같다.

        발을 땅에 대어야만 다시 들 수 있고 그래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발을 땅에 대고 다시 들고 하는 동작을 쉬지 않고 하여야만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이치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劃(획)이라는 것은 단순히 평범하게 질질 끌고 가는 것이 아나라는 점이다. 단순히 끌고 가는 획은 마치 모래위에 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 굵고 가는 획이나 얕고 깊은 질감이 없다. 이러한 것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어떠한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서예라는 것은 다양한 표정이 있어야 한다. 米元章(미원장)은 '붓은 둥근 것을 귀히 여긴다.'라고 하였고, 黃山谷(황산곡)은 '용필의 묘가 바로 붓을 들고 누르는데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바로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평면상에 입체감을 표현하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글씨에 있어서도 종이 위에 단순한 획이 있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龍蛇飛騰(용사비등)한 정신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서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것을 다시 말하면 획이 전환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누르고 떼는 것을 정확히 하여야만 필봉이 순리적으로 나아갈 수 있어 획이 늘어지지 않게 된다. 필봉이 만약 副毫(부호)와 어그러지면 筆鋒(필봉)의 작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이른바 萬毫齊力(만호제력)의 구실을 다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붓의 장점을 제대로 펼칠 수 없으니 이런 획으로 이루어진 글자는 참다운 글씨라 할 수 없고 단지 먹을 붓에 묻혀 종이에 마구 바른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

                                                           
                                                
      (참고-중국서법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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