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서예 사랑에 빠진 일본인]

- 코리안 링크스 (숟가락) 70호 기사 -

  한국어 번역문  

Sukkara(숟가락)[코리안 링크스] 70호-2011년12월호

 일본서예 뿐만 아니라 한글서예도 즐기는 와타나베 미나코 씨. 일본에서는 아직 드물 수밖에 볼 수 없는 한글서예를 와타나베 씨는 어떻게 만났을까? 그 만남과 한글서예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서예의 길이라는 선택>

“흘러가는 듯한 곡선의 아름다운 가나(仮名)서예. 이 예쁜 일본문화를 외국에 더 전해 주고 싶다.”

 와따나베 미나코가 고등학생 때 다니던 집 근처의 서예학원 선생님에게 이렇게 자기 꿈을 말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가까이 하고 지내 온 와타나베 씨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담담하게 글자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교는 미술계 대학교로 진학해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실제로 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손을 움직이는 작업이 없으면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장인처럼 부지런한 작업을 하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작업 같아도 하면서 궁리해 보며 새로운 표현을 찾는 것을 좋아 해서요……”

 대학교 졸업 후 자신의 진로를 못 정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존경하던 어머니와의 사별이라는 갑작스러운 슬픔을 경험했다. “어머니가 저한테 ‘너에게는 서예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라고 말하시던 것이 생각나서 서예의 길을 가려고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52살에 돌아가셨습니다. 미술적인 센스가 뛰어나셔서 그림도 정말 잘하셨는데 결국은 그 재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 하시고 돌아가시게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대신으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예의 길도 쉽지가 않고 서예계 엘리트 선생님들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시절, 2002년 축구월드컵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러 관광명소를 돌아다니고 서울 인사동 길을 걷는데 한 갤러리에 전시된 한글서예 작품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서예의 수련은 쌓아 왔지만 대학교에서 배운 디자인도 버릴 수 없어서 어느 길을 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시기이었습니다. 저는 서예계에서는 조금 색다르다는 것도 느껴져서요. 그런 때 만난 새로운 한글로 쓴 서예작품. 일본의 서예만이 아니라 여러 글자가 있는 것이구나 하고 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문자아트. 서예를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생활 속에서 접해 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이 그어진 스타트라인>

 2004년에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나가사키로 이사 가게 되었다. 와타나베 씨는 이것을 ‘지금까지의 헤맴을 다 없앨 수 있는 신이 주신 계기’로 여겼다. 그래서 전부터 하고 싶던 한글서예를 배우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TV, 라디오, 참고서 등을 사용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기초가 된 후 네이티브 선생님하고 일주일에 4시간씩의 수업. 스스로 고른 신문기사는 의미를 해독해서 소리 내어 읽고 저만의 참고서를 만들고……. 목표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와타나베 씨는 거의 독학으로 한국어능력시험 가장 높은 급수인 6급까지 취득해 냈다.>

 한국어 공부를 하는 동안에 한글서예 선생님도 찾았다. 한국에 가서는 서점과 필방을 다니면서 한글서예 관련 책을 모조리 찾아 봤다. 그런 가운데 찾게 된 분이 나루 이명환 선생님이다. “한글 고전을 배우신 단정한 글씨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추구를 계속 하시는 인상을 주어서 이명환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해서 4년이 지난 2008년 3월에 드디어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다. “저는 일본 규슈지방에 사는 30대 주부입니다. 그런 문장으로 시작 된 어색한 한글로 쓴 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답장이 오지 않아도 당연하고 생각했습니다.” 기대감 반 단념함 반이 섞인 기분으로 기다리던 3일후 답장이 왔다. “배울 수 있어요. 괜찮아요.”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있는 선생님이 체본을 보내 주시고 나는 그것을 연습해서 제출하였다. 그것은 체본과 함께 첨삭을 받아 다시 돌아온다는 한글서예의 통신교육이 시작되었다. “2009년에 제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선생님이 축하하시러 와 주시기도 했습니다. 정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은 저를 수제자라 불러 주시니 기쁩니다.”

 그냥 주부 입장이라도 꿈을 꾸어도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와타나베 씨. “지금도 외국에 일본의 예쁜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 문화도 알아야 하지요. 그런 마음에서 한글서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씨는 언젠가 인사동의 길거리에 있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와타나베 씨라면 그런 날이 오는 것도 멀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신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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