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이란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미움이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무관심이 사랑의 반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미움은 오히려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이 세상에 무관심처럼 큰 병은 없다. 현대인은 무관심으로 병들어 가고 있고 또 죽어가고 있다. 특히 노인들은 자녀들의 무관심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있다.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무관심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다. 무관심은 오히려 사랑의 반대인데도 우리들은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우리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은 직장의 일이나 사업상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에게 자녀교육을 맡기고 돈만 벌어다 주면 사랑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무관심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러한 부모야말로 전형적인 무관심형 부모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을 필자가 계절대학에서 가르친 어느 여교사의 경우로서 다른 학생들만 가르치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정작 자기 자녀에게는 무관심함으로써 자녀가 '본드'를 흡입하여 소위약물중독에 빠진 엄청난 충격을 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 선생님이 직접 체험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한달 전쯤이었습니다. 은행에 가려다 도장을 안 갖고 가 갑자기 집에 들렸었습니다. 거기서 목격한 장면은 글세 내 아들이 본드를 흡입해 정신이 몽롱한 체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울다 통곡하다 결국은 정신신경과에 반 강제로 입원을 시켰습니다. 한 달 동안 아들을 병원에 넣어 놓고 넋이 나가 허깨비 마냥 살았습니다. 내 나이 마흔 셋. 두 애를 무난히 대학에 입학시켰다고 남들이 부러움을 산지 채1년, 고2 아들이 이 지경이 된 것이지요. 저는 내 아이들을 잘 교육시켰고 구김 없이 잘 키웠습니까?" "교직 21년, 참으로 저는 좋은 자질 있는 교사라는 생각에 매일 매일을 즐겁게 출근하고, 아이들과 수업하는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해마다 저를 거쳐 간 아이들은 즐거운 한 해였음을 회상하곤 했습니다. 실력으로는 자랑치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할 만큼은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자부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들만큼은 다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그렇게 보낸, 보람된 시간들이 지금 이 시점, 내 자식들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 선생님이 울부짖는 것처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이 사건은 자녀교육이 정성을 다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이 선생님의 경우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또 얼마나 자녀가 중요했으면 21년간 아이들에게 바쳤던 사랑을 되찾아 자기 자녀에게 주고 싶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겠는가? "남의 자식 가르치라 내 자식 그르쳤나 하는 자책감에 잠을 못 이룹니다. 어머니며 선생인 사람이 저 하나 뿐이겠습니까 만 차라리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시간들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었던 사랑과 정성을 되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내 아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지금 그만 둔다고 결코 아들이 바람대로 될 것이 아니지요. 그대로 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여태까지의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 주위에서 인정받는 '능력 있는 여자', '실력 있는 선생', 두 딸아이가 인정하는 적어도 꼭 필요한 인간으로서 '나'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중독 된 것만큼 자녀도 본드에 중독 되었다고 자신을 반성하는, 자신이 가르침에 중독 된 만큼 자녀도 약물에 중독 되었고, 자녀가 약물에서 쾌감을 얻으려고 한만큼 자기도 교직에서 쾌감을 얻으려고 했다고, 지나치게 교직만을 탐닉했던 자신을 선생님은 후회하고 있다. 이 선생님의 통곡이 주는 의미, 부모와 자녀가 함께 치유를 받아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이 선생님과 같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자기 직장에만 충실하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관심이 없이 지내다가 자녀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 대부분 그 원인을 자녀에게 돌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바로 부모에게 있었던 것인데 책임은 자녀에게 돌리고 있는 게 문제다. 이 선생님의 경우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교직생활을 재진단하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였으며, 자신이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재발견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 한해 있었던 어쩔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일로 인하여, 저는 앞으로의 나 자신의 삶 자체는 물론 교직생활을 재진단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것입니다. 우선은 자신을 버려야겠지요. 얼마나 보잘것없는, 이룬 것 없는,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었는지, 사람은 평생 배워도 다 못 배운다고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가지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성장시킴으로써 자녀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부모가 관심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지나친 관심을 간섭이라고 거부하고 있으나 무관심은 자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1년간이나 급우들한테 각종 비 인간것인 방법으로 해꼬지를 당했던 장세완 군의 어머니 최숙자 여사는 장 군의 평소 행동에 무관심했던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후회하고 있다. 장군이 "오늘 나 학교에 안가면 안 되요?" 라고 이불 속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했을 때 밥 먹는 것처럼 학교는 가야한다며 강요하지 않고 그 이유를 관심을 갖고 물었다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상황까지는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고 장군의 어머니는 말하고 있다. 제아무리 관심을 갖는다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관심은 무관심과 같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즈음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소설 '아버지'를 보면 주인공인 아버지는 딸에 대해서 해준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이 공허한 것이듯 행동이 없는 관심 또한 일으키고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마음속으로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랑의 출발점이 될지언정 사랑의 완성은 될 수가 없다. 물론 마음을 두지 않는 실천도 문제이다. 관심은 사랑의 요소이면서 사랑의 원리요 방법이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관심권을 확대해야만 한다. 남에게 관심을 갖는다해도 마음으로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으로 관심을 나타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때 참사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인간을 관심 속에서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고 교류한다. 그래서 관심이 곧 사랑인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가 없다. 관심이 있다해도 실천이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관심은 사실상 효력이 없다. 그것은 사랑이 될 수가 없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에 대해서 갖는 관심처럼.
글:김용숙(서울교육대교수,교육학 박사,아동교육협의회) |